대장놀이
누아르 영화를 보면 조직 폭력배들 간의 의리와 암투가 주요한 내용을 이룬다. 조직 폭력배는 대표적인 패거리 문화로, ‘형님’은 동생들을 식구로서 책임져주고, ‘동생’은 충성을 다해 형님과 조직을 위해 일한다.
이런 패거리 문화는 사실 인간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직장에서도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을 한다. “누구누구 라인”으로 인정받으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조직 안에서 빠르게 승진할 수 있다. 여기에도 형님과 동생이 존재한다.
다수가 모인 집단에서 권력은 결국 자신을 따르는 사람의 수에서 나온다. 따라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이들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원한다. 대단한 야망이 없는 사람들조차 자신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를 원하는 것을 보면, 이는 의식적인 욕구라기보다 본능에서 기원한 무의식적 욕망이 아닐까 한다.
최근 교수 한 분을 만났다. 정교수에 주임교수이신 분이라 아쉬울 것도 없고 부족할 것도 없는, 그야말로 부러움의 대상이다. 사람들이 찾아가면 좋아라 하시고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잘 챙겨주신다. 하지만 늘 자신의 말을 듣는지 계속 상대를 시험한다. 술을 먹으라고 하면 먹는지, 심부름을 시키면 하는지, 자신이 하라는 말에 순순히 따르는지 말이다.
나는 이를 “대장놀이”라고 부른다. 사람들 모임에서 내가 대장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고 즐거워하는 일이다. 내가 하는 말에 모두가 귀 기울여 주고, 내 주장에 동조하며, 내 생각을 대단하다고 인정해주는 분위기. 또 내가 술을 마시라고 하면 마시고, 춤을 추라고 하면 춤을 추는 그런 상황이다. 작지만 권력을 쥐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패거리 문화에서 형님은 늘 이런 대장놀이를 하고, 동생들은 이에 맞춘다. 권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계속 서로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장놀이가 지속되려면 서로 보호와 충성의 계약이 필요하다. 옛날 왕과 기사, 갱 조직의 형님과 동생의 관계처럼 말이다.
이런 보호와 충성의 관계는 더 느슨한 형태일 수도 있다. 형님이 동생에게 밥과 술을 사주고, 잘 지내는지 따뜻하게 챙겨주며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면, 동생은 형님을 좋아하게 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대장놀이는 상호 파괴적이다. 형님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충성을 요구하고, 동생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순종한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관계의 조건이 “All or Nothing”, 즉 한 번이라도 순종하지 않으면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호해줄 것이 적을수록 형님은 동생에게 더 어려운 숙제를 낸다. 그의 불안은 상대가 어디까지 순종하는지 시험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그 분이 그러했다. 이분은 함께하는 술자리를 좋아하시는데, 술자리에서 대장놀이가 최고조에 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분과 단둘이 만나기를 꺼린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수록, 어쩌다 찾아온 사람들에게 대장놀이가 더욱 심해진다. 늘 내 편인지 아닌지 시험받는 것 같아 사람들은 부담을 느낀다. 그저 서로 관심을 갖고 “외로우니 자주 와달라”고 했다면 찾아올 사람이 많았을 텐데 말이다.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원하는 것과 반대로 행동하는 셈이다.